과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가?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판단이든지 항상 옳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그 좋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이를 가늠하게 해 주는 지혜의 구절이 있어 함께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널리 알려진 금강경에 대한 다섯 주석서인 오가해에서 나오는 경구입니다. 본디 첫 행만으로 전개되지만 그 뜻을 새기기 위해서 네 단계로 돌리는 풀이도 있습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똥을 먹고 밥을 싼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잘 먹어야 하고 또한 잘 먹었으면 잘 싸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을 더 바랄까요? 이 세 가지는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잠시의 예외도 허용할 수 없이 똘똘 뭉쳐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먹고 싸는 일은 떼어놓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이가 불편해서는 곤란합니다. 결국 밥 먹고 똥 싸는 일은 ‘한통속’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밥과 똥이 과연 ‘한통속’에서 어떻게 함께 있을까요? 사실 밥이 들어가는 구멍과 똥이 나오는 구멍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만큼 열려 있고 그 자체로는 비어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밀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열려 있고 비어있기까지 한 밥줄과 똥줄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밥을 먹으면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가고 소장과 대장의 각종 소화기관을 거쳐 항문으로 똥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밥이고 어디서부터 똥인가?’ 이렇게 물으니 밥과 똥의 경계가 생각만큼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악마가 차라리 도덕적이다

완벽한 도덕군자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흠잡을 데라곤 찾을 수 없이 참 훌륭해 보입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니 더할 나위 없는데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자선을 베풀면서 그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들 위에 올라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우월감과 만족감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공적을 근거로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수도 있는데요.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중세 마지막 철학자요, 추기경이었던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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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있게 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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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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