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리는 이스라엘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아들이 낳으면 너희는 그를 네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도와주라 했으면”
(출애굽기 1:22)

  출애굽기는 구약성경의 두번째 책으로 애굽에서 큰 민족이 되어 이스라엘이라 불리우는 야곱 후손들의 운명을 기록하고 있다. 첫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바로에게 종살이 하게 되었는지, 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떻게 그 억압의 땅을 빠져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115장). 이 사건 때문에 이 책은 라틴어 성경에서 ‘엑소두스’ (빠져 나옴) 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우리말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라고 불리게 되었다. 출애굽기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출애굽 때의 험난한 경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내산 계시와 거기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맺은 인약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한 백성을 택하시고 신실하게 그들을 돌보심으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할 일은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창대함

하나님께서 창세기 46:26-27 에 축복하신대로 야곱이 자손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할 때 칠십인을 이루었다. 70이던 백성의 숫자가 이제 큰 백성이 되었다. 70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충만을 상징하는 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신 번성의 약속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본문 7절은 창조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번성하라고 복을 주시던 것을 상기시킨다 (창1:28). 땅이라는 단어는 창세기에서는 온 땅을, 본문에서는 애굽을 가리킨다.

 

 

애굽의 억압, 하나님의 손길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면서 애굽을 위해 요셉이 했던 일들은 잊혀졌다. 애굽 임금은 지혜롭게 이스라엘 백성을 줄이려고 그들을 억압하는 것 때문에 결국 자신이 걱정했던 일 (저희가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이 발생하고 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역 (공공 건축사업에 노동력을 강제적으로 제공할 의무) 에 끌려 나갔다. 이 일이 람세스 2세가 동부 나일 삼각주에 새로 건설한 왕궁의 확장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애굽인들이 공포에 떨게 된 것은 여기에 어떤 강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역에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벽돌을 제대로 만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필요한 잘게 썬 짚의 제공을 중단하였다. 

 

억압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하심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줄이기 위하여 새로운 조치를 취하지만 이 또한 성과가 없었다.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산모가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산파들은 바로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산파들이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들이 바로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그의 계획이 좌절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명령을 거스렸다. 산파들이 둘러대는 핑계에는 용기와 기지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본문에서는 산파들이 아기들을 구하기 위하여 사실 아닌 것을 말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지 않았지만, 이 여인들은 보상을 바라서 그렇게 행동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애굽 임금이 이 마지막 조치로도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개별적인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생각하기 

1:20 에 “하나님이 ….. 은혜를 베푸시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산파들이 바로에게 ‘히브리 여인들은 건장하여 자신들이 이르기 전에 해산한다’ 고 말한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 이는 산파들의 변명이 단지 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만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말이었음을 뜻한다. 즉 산파들은 바로에게 자신들을 통해 히브리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득시킴으로써 유아살해 정책을 포기하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의 필연성을 보여 줌으로써 그 시기 또한 임박했음을 시사해 준다. 동시에 애굽왕 바로로 상징되는 사단과 불의의 세력들이 우리를 해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