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 안디옥으로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행 18:18)

새로운 지식에 관심이 많은 아덴 사람들은 바울이 전혀 다른 차원의 이론가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났다. 복음의 철학적인 접근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였으나 부활에서 대화가 단절되었다. 다시 대화하자는 점잖은 표현 속에는 대화의 단절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에게 육신은 영원한 감옥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과 완성인 부활이 새로운 육체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철학자들은 생각하였다.

고린도에서
고린도는 로마제국의 아가야 주 수도이며 총독의 거주지였다. 고린도는 부유한 상업도시이며 심각한 타락문화로 악명을 떨치는 항구 도시였다. 이 곳에 거주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주후 49년에 로마에서 추방되었을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본도 출신의 그리스도인으로 로마에서 기독교교회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부인이 남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율법교사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바울에게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자비량 사역자로 서기 위하여 전문 장막 제조공인 바울로부터 그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이 직업을 가짐으로서 선교공동체에 필요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하여 직업을 갖거나 공동체 안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이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의 종교 정치화와 갈리오 총독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디도유스도라 하는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회당 바로 옆에 붙은 자신의 집을 집회장소로 허락하였다.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과격한 유대인들의 방해는 복음 전파와 정비례하여 행해졌다.

회당장 그리스보에 이어 그의 후임인 소스데네까지 회당장으로서 교회에 헌신하게 되자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이유로 재판장으로 끌고와 총독 갈리오에게 처벌을 요청하였다.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려 하자 총독은 그의 말을 듣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말을 하였으면 처벌을 수용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유대인들의 종교법에 관한 것이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들을 돌려 보낸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국가의 질서와 권위를 파괴하면서 소동을 야기시킨다고 모함하였지만 총독은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내부문제를 공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의 적대자를 몰아내려는 졸렬한 술책임을 알아차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하는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라고 위로하셨디.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면서 다른 면으로는 도전이 된다.

겐그리아에서 삭발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향하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동행하였다. 겐그리아에 이르러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를 떠나 안디옥으로 향하였다. 그가 서원한 것을 완성하였다는 의미로 그의 머리를 깎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보편적으로 서원은 그가 약속한 것은 잠정적으로 완성한 후에 행하는 결례에 비추어 본다면 예루살렘에서 떠나기 전의 약속이나 고린도에서의 약속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가 서원한 것을 잘 완수할 수 있도록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것이며 또한 그가 약속한 일정 기간이 겐그리아에서 완료되어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도전
안디옥교회의 선교비전으로 인하여 바울 일행이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지역교회는 그 지역의 형편과 유대교와의 관계로 인하여 신학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바울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가능한 한 공동분모를 유지하게 하여 하나의 교회로 유지하려 하였으나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단호하였다.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며 협력하는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하였다. 이미 존재하는 교회를 신생교회와 연결시켜 책임을 지는 일의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하나의 지역교회는 다른 교회와 협력관계를 가짐으로 힘을 얻을 수 있고 더욱 확장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임성진 총장

남종성 교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