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으로 돌아온 모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출애굽기 4:21)

모세 오경의 저자는 모세이다. 따라서 이같은 모세의 행적을 그 내면적 심경까지 시사하며 기록한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모세 자신이었다. 그리고 모세가 여기에 쓰여진 자신의 귀향 사건을 기록한 것은 이미 출애굽이 성취되고도 오랜 후 곧 40 년 광야 생활의 후반부였다. 따라서 결국 모세는 이 같은 기록 방법을 통하여 전날 자신은 하나님의 강권적 소명에 따라 부득이 애굽으로 귀향하면서도 사실 그 스스로는 확신이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과거 자신이 실제 귀향하던 시점에서는 자신은 확신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명대로 따르기만 했는데 이제 본서를 기록하던 시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성취되었다는 사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아론과 함께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기를 주저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이적 (손에 문둥병, 문둥병의 회복)을 행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이든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나만은 보내지 마소서’ 라고 딱 잘라 거절한다. 이제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반응에 응하시면서 모세 대신 말하는 자로 아론을 모세에게 붙여주셨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입이 되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듯이, 아론은 모세가 하나님에게 위탁받은 대로 백성에게 전해야 한다.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애굽으로 향하였다. 그는 식구들에게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잘 생존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다. 모세를 죽이려했던 임금이 죽음으로 모세는 더욱 담대히 애굽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예배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시지, 바로를 섬기기 원하지 않으신다. 이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신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사람들은 그 상실한 마음 그대로 두시어 진노의 심판에 이르게 하신다. 바로의 장자가 죽도록 내버려두실 정도로 그 백성에게서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모세를 죽이려하심

이 짤막한 이야기 (4 장 24-26 절)는 수수께끼같고 마음에 걸린다. 하나님께서 불러 보내시는 사자를 하나님이 몸소 죽이려 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25-26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던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이행해야 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방인과 언약 백성을 구별하는 할례조차 자신의 아들에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보라는 자기가 베어낸 피묻은 아들의 양피를 모세의 발에 대면서 모세를 피남편이라고 부른다. 이런 내용은 어린이 할례의 도입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고 사람에게 어두운 측면을 하나님이 보이시기도 한다 (창 31 장 22-32, 야곱의 환도뼈 위골).

생각하기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대하여 어느 시점에서 어떠한 생각을 갖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그대로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과거 모세의 경험을 기억하며 앞날의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 대해서도 더욱 새로운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론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확신을 갖든지 안 갖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될 것이지만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더욱 더 큰 축복을 온전히 누릴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 자녀의 할례 사건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실현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인물이 모세임에도 그 자녀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눈감아 주시기 않았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진 모세가 자신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였고 따라서 그러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 준수와 성결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도 받은 사명이 크다고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