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애굽기 2:15)
본문은 모세가 40년 동안의 애굽 궁전생활을 마감하고 40년 광야생활이라는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문을 세밀히 살펴보면 모세가 궁전에 들어가 생활한 40년의 생활 즉 10절과 11절 사이의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은 완전히 생략한 반면 모세가 미디안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는 사건은 11-15절에 이르는 다섯 절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밝힌다. 이는 지금까지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는 애굽 궁전 생활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생활을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출애굽의 지도자로 훈련받게 되는 사건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애굽사람을 쳐 죽임
왕궁에서 왕자의 교육을 받던 모세는 어른이 되자 자기 형제들 곧 고역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아간다. 마침 그 때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보고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죽였다. 모세는 그 애굽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그 히브리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 아니라 민족애와 의협심 때문에 행한 일일 것이다. 그 당시 애굽인들이 노역을 당하는 히브리인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모세의 분노가 더 컸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서로 싸움
모세가 다음 날 히브리인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며 동족끼리 싸우지 말라고 꾸짓었다. 히브리 동족이 애굽인들에게 고역을 당하는 일도 참기 어려운 일인데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모세는 형제들에 대한 연대감을 드러내어 보였지만 이 형제들 스스로 사이에는 연대감이 없었고 서로 싸웠다. 억눌린 히브리인들의 권리를 위하여 모세가 나섰지만 아무런 열매도 거두지 못하고 불신만 불러 일으켰다. 모세에 대한 비난 한 가지는 모세가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애굽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정당하지만 이로 인하여 모세는 왕궁에서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디안에서 르우엘을 만남
미디안 땅은 아브라함과 그의 세번 째 부인인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난 네번째 아들인 ‘미디안’ (창25:1,2) 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아카바 만의 동부 해안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명확한 경계선을 확정짓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미디안 사람들이 유목민으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인 르우엘을 만났다. 르우엘은 후에 모세의 장인이 되는 ‘이드로’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이 섬겼던 이방신의 제사장이다. 모세는 르우엘을 위하여 일하며 그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르우엘의 딸과 혼인하다
르우엘은 모세와 대면하여 보고 그의 타고난 준수함 (2절)과 애굽의 왕족으로서 몸에 배인 기품있는 언행을 보면서 호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르우엘이 모세에게 그의 딸과 결혼할 것을 제안하자 그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의 아내 이름은 십보라 ‘작은 새’ 라는 뜻의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참으로 좋은 내조자를 준비해 두고 계셨다. 그녀는 모세와 함께 애굽으로 귀환할 때 모세가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하자 그의 자녀 에게 할례를 행하고 양피를 모세의 발에 던짐으로써 화를 면케 하였으며 (4:24-26) 또한 자기와 자녀 들이 모세의 민족 구원사역의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미디안으로 돌아갔다가 모세가 자기 민족을 이끌고 시내 광야에 나왔을 때 모세와 다시 합류(18:1-5) 할 정도로 헌신적인 아내였다.
아들 게르솜을 낳다
모세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 ‘객’, ‘이방인’ 이라는 뜻을 가졌다. 모세는 같은 셈족의 땅인 미디안에서 아내를 얻고 자신의 가계를 승계할 아들까지 얻었지만 아직도 미디안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방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세의 이와 같은 ‘나그네 의식’은 곧 자신이 변할수 없는 ‘히브리인’ 이요 ‘이스라엘의 자손’ 이라는 확고한 ‘선민의식’을 반영한다. 모세는 미디 안에서의 생활이 길어져도 미디안에 동화되어 미디안 사람이 되지 않았다. 모세의 이런 점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가나안으로 이어 갈 지도자로 선택 받은 요소이다.
생각하기
모세가 소유했던 이같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덕 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민족애를 가지고 있었던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뜨거운 민족애를 가진 이 땅의 성도들을 통하여 이 민족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신다.
한편 모세가 이방인이었던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사실은 이미 구약시대, 광야교회 (행 7:38) 시대로부터 구원의 문이 이방인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져 있었으며, 어느 시대에나 구원은 혈통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히11:1). 성도들은 비록 이 땅에서 집을 짓고 가족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이 땅이 우리의 본향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다만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성도들은 비로소 이 땅의 모든 속박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행 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