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 19:21)
사도행전 1:8이 사도행전 전체를 암시하듯이 사도행전 19:21은 사도행전의 대 단원인 19:21-28:31의 내용을 암시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선교지였던 유럽쪽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가는 여로를 택한다. 그는 지금까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 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정하실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바울이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 두 사람,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먼저 보내는 것은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데메드리오 소동 에베소에 있는 다이아나 신전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것이다. 다이아나는 헬라어 아데미에 상응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는 이 이름으로 수렵의 처녀 여신이 아니라 소아시아 다산의 여신인 ‘위대한 어머니’를 숭배했다. 그들의 예배에 사용되는 그 형상은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서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그 우상을 복제하는 일은 큰 사업이었다. 이 일은 행 13:6-8에 언급된 바보 지역 거짓선지자 바예수가 그의 종교와 직업을 연결하는 것을 기억나게 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27절에서 우상과 그와 관련된 종교사업자들을 은근히 반어적인 표현으로 조롱하고 있다.
종교사업자와 군중심리 선동 바울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우상영업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가르치자 소위 우상장사 회원들이 자신들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울의 입을 막고자 군중을 회집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대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라고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자신들이 지켜왔던 아데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고 선동하였다.
모든 군중이 그들과 동조하여 온 성이 요란하게 되자 그들은 바울의 동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에베소의 연극장으로 끌고 갔다. 이 연극장은 24,00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 곳은 사람들이 불만이 있을 때 찾아와서 그들의 항의를 큰 소리로 표출하는 곳이었다.
위험에서 도움의 손길 바울이 두 사람을 변호하기 위하여 극장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제자들과 호의적인 몇 몇 관원들의 만류로 이 소요 장소에 들어가 어려음을 겪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소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모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군중심리로 일어나는 폐혜를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우상제작을 반대하였으므로 함께 매도 당할 것을 우려하여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내 보냈으나 너무나 소란스러워 아무 변병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유대인이 그 곳에 있다는 이유로 더욱 소요가 심해졌다. 군중들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 동안이나 이유도 모른채 소리지르고 있었다.
에베소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설득하였다. 서기장은 에베소 시의 고위직 관리의 관직명이다. 그는 군중의 난동에 대하여 로마의 치안권을 발동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40절).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의 신전 수호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떠 맡았다. 서기장은 군중들에게 법적인 절차를 통하여 정당하게 소송을 진행할 수 있으므로 억지를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서기장이 그리스도인들과 사태 전체에 대하여 내린 심판은 누가의 눈에는 중요한 것으로 인지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반복하여 소요죄를 뒤집어 씌워서 그리스도인들을 해치려고 하는 그릇된 행태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기 하나님께서 행 1:8절에 명령하신 선교의 지경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바울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 어떤 때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절망적일 수도 있으나 어떤 때는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제 로마로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것을 예견하면서도 담대하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사도 바울 일행의 선교여정에 어떤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