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힘과 뚫림, 채움과 비움이 모두 하나
마스크 없이 일상을 지내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방역을 위해, 또 건강을 위해 우리는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 마스크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스크는 비말 차단과 방어의 비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생각한 나머지 섬유가 너무 빽빽이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코로나 종식 이전에 질식하거나 호흡곤란을 겪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쓰는 마스크는 바이러스를 막으면서도 숨을 쉬도록 뚫려 있습니다. 즉 막혀 있으면서도 뚫려 있고, 닫혀 있으면서도 열려있습니다.
우리 몸도 이미 이렇게 생겼습니다. 우리 몸의 구조 역시 이토록 오묘한 역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우선 눈을 먼저 살펴보면, 사람의 눈은 생물학적 해부도로 봤을 때에는 속이 꽉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빈틈없는 눈이 무언가를 보게 되면 꽉 찬 속을 관통해서 망막에 상을 맺어줍니다. 차 있긴 하지만 빛이 통과할 수 있도록 비어있기 때문에 망막에 상이 맺히고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건데요. 만일 빈틈없이 꽉 차 있기만 하다면, 눈은 망막에 상을 맺을 수 없고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꽉 차 있으면서도 비어있습니다. 눈이야말로 ‘텅 빈 충만’을 우리에게 몸으로 가르쳐주는 탁월한 기관이 아닐까요?
입 속의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입은 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속을 혀가 채우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를 떠올려 볼까요? 입안을 채우고 있던 혀와 치아가 음식을 씹을 때에는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만약 그걸 감지한다면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불편함이 느껴져서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있는데 없습니다. 채워져 있는데 비어있습니다. 엄연히 있는데도 없는 것 같은 쓰임새덕분에, 채워져 있는데도 비어있음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먹고 몸을 채워갑니다. 그리고는 또 비워냅니다. 참으로 절묘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몸이 가르쳐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없음이 있어서 있음이 일한다
일찍이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여 한 개의 바퀴통을 만들지만 수레를 움직이는 것은 가운데의 빈 구멍. 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을 쓸모 있게 하는 것은 그릇 속의 빈 곳.
그러므로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쓰임에 있는 것.
수레바퀴는 바퀴살이 복잡하게 엮어져 있지만 가운데 있는 빈 구멍 덕분에 부드럽게 굴러갑니다. 그릇은 비어있지만 음식을 담음으로써 그 기능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벽을 쌓은 후 천장을 얹고, 다시 문과 창을 내어 안팎을 오가니 원래 텅 비어있던 공간 덕분에 방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비움에 있습니다. 비어 있음이 그 본질을 채웁니다. 즉 비움이 채움입니다. 노자는 이를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쓰임에 있는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해줍니다. 없음이 쓰인다는 것인데요. 없음이 엄연히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쓰임으로써 있음이 비로소 역할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없음이 있음의 결정적인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없음이 우리에게 주는 넉넉함
사실 이런 식으로 보면 우주가 운행되는 물리도 그러하고 그 안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명체의 생리도 그러합니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꼴인 심리도 그러하며 결국 삼라만상의 원리가 그러합니다. 이토록 몸이 살아가고, 움직이는 꼴이 그러하다면 이것이 우리 삶에 대해서 가르치는 바는 실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채우는 것만이 대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 몸을 보고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면 반대로 가정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텐데요. 만일 오로지 있기만 해서 더 있으려 하고, 채우기만 해서 넘치도록 채워나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지구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쓰레기더미가 되었을 것이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저주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도 스스로 없애고 비우는 자정작용을 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기도 하지요. 지금 우리가 생태위기에 대해 지구적 차원에서 걱정하고 대책을 세우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터도 우리 삶의 마땅한 꼴이 없음의 쓰임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것이 그저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있음이 필요하고 어떤 있음을 버려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없음에서 왔고 없음으로 돌아갈 있음이라는 것입니다.
없음에 둘러싸인 있음이지요. 있기만 한 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있으면서도 없음으로서의 넉넉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즉 없음이야말로 우리를 일깨워주는 지혜이겠지요. 감사합니다.